[이준영 박사 칼럼] 건강은 육체에 대한 경건한 예의다.
페이지 정보
최고관리자 기자 작성일2021-06-12 22:10본문

이 준 영 박사
삶은 아픔 안에서 침묵한다. 두려워 떠는 공포가 아니라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경건한 예의다. 삶의 예언이며 가장 안전한 평안이다. 이제 삶이 길어졌다. 친구들은 공직을 마치기 시작했고 백세시대의 도래를 바라보는 삶의 여정은 건강하게 살아야하는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인생 2막은 또 다른 시작이다. 더 뒤로 갈 수 없는 출발선이다. 생각해보면 어른이 되면 어떻게 될 것인가를 걱정과 호기심으로 보았던 청춘보다 더 나쁠 것도 없다. 한 가지가 부족하다면 육체가 조금 불편하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 아쉬움보다 더 많은 장점을 가지고 시작한다. ‘이렇게 하면 안되더라’ ‘그렇게 하는 것을 보니 괜찮더라’ 판단도 되고 지혜도 생겼다. 요령이라면 요령도 가지고 있고 사람들과 관계도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갈 수도 있다. 그때보다는 약간의 여유도 있고 대담해졌다.
이제 인생 2막이 시작되었고 나는 출발선에서 약간의 고민을 하며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청춘의 한 시절에 청년문화라는 세류의 낭만이 있었다. 청바지와 기타와 긴 머리로 불리어진 시대에 나는 종로2가의 쏟아지는 빗줄기에 더운 피를 식혔다. 그 아이들을 지금은 7080시대라고 불어준다. 광화문 아이에서 종로의 노인으로 변화된 세대 그 거리를 걸어보았다. 참 세상은 많이 변했다. 늙어도 죽지 않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세월이 가고 난 후에 생각나는 얼굴, 그리고 이름, 그것은 내 자신의 모습이었다. 흘러간 팝송으로 여유를 찾고 긴 호흡을 내쉬어보지만 역시 지나온 날은 후회뿐이다. 그러나 젊음으로 돌아가려고 하지 않는다. 그것은 어리석은 일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그것은 이루어질 수 없다. 백세의 노인에게 육십대 같다고 칭찬하는 것은 위로다. 세월을 인정하고 지금 이 순간에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노년의 삶이 지혜다. 그렇게 하면 노인은 결코 사회에서도 무가치한 잉여인간으로 남지 않는다. 젊음이 모두 좋았던 것은 아니지 않는가. 친구들과 이야기해보면 ‘젊음은 좋은 것이지만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 인생을 시작하라고 하면 싫다’라고 말한다. 세월이 가면 지혜로울 수 있다. 바둑이나 운동경기를 보면 관람자가 더 냉정하고 정확한 작전을 구사할 수 있는 것을 본다. 삶을 살면서 자연히 몸에 익은 습관과 생각이 지혜를 만드는 것이다. 물론 젊은 사람들도 지혜로울 수 있고 노인이 어리석을 수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나이가 든다는 것을 인정하고 삶을 살아가는 것은 남은 생을 위해서 매우 중요한 일이다.
나이 60이 넘어 비로소 나는 내가 출발선에 있음을 깨달았다. 훌쩍 어디서 자라온 아들의 모습은 미안하고 부끄럽다. 이제 늙어가는 사람에게는 지독한 건강이 필요하다. 이 시대와 국가와 가정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할 수 있는 최대의 배려와 예의다. 우리가 식약저널을 만들어 함께 세상을 안전하고 행복하게 만들어야 하는 이유가 된다. 이곳에서 그런 것들이 공감되어지기를 원하고 모두에게 감사하다.
세상은 참 시끄럽다. 많은 사람들의 부딪히는 소리도 요란하고 사람을 대신하는 기계의 동작도 시끄럽다. 사람이 사는 곳을 떠나면 세상은 참 조용하다. 자연의 경쟁은 늘 조용하고 은밀한 순종이다. 죽어간 것들을 넘어 그 위에 엎드린 경건하고 거룩한 복종이다.
나는 새로운 무대에서 펼쳐질 2막의 대본을 쓰면서 전율하고 있다.
인생 2모작은 이렇게 모판에서 다시 심겨질 논바닥으로 흙을 기다리고 있다.
[이준영 박사 주요 프로필]
식약저널 발행인
낙타방송 대표이사
한국성시문학회 이사장
한국신문방송총연합회 이사장

